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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로마 가톨릭의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_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누구인가?>

그의 철학사상은 이러하다.


우선 그의 존재론은 신학 전체의 특징을 이루는 것으로 실재적 색채가 강하다. 신과 피조물(被造物)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는 '존재의 유비'를 사용하여 유비와 참여의 개념으로 동일성 안에 차별이 있는 존재를 파악할 수 있게 하여 불가지론과 범신론의 위험을 피하였다. 본질 구조의 규정 원리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 가능태와 현실태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더욱이 아비 체나에게서 발견한 '본질과 존재'의 구별을 이용, 그의 독자적 원리를 전개하고, 본질과 존재가 일치하는 신 존재의 필연성,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관념을 확립하였다.

그는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하여 스콜라 철학을 대성한 중세 기독교 최대의 신학자이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할 때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완성시킨다"는 태도를 갖고 은총과 자연, 신앙과 이성 사이에 조화로운 통일을 부여했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고상한 부분이므로 인간이 자연 전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 것은 신을 찬미하는 길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전 자연은 신이 창조한 것이다.

그의 인식론은 본질에서 존재론적인데 이성은 감각이 주는 내용으로부터 추상작용 때문에 대상의 본질 개념을 형성한다고 주장하고 능동 지성과 수동 지성을 구별한다.


도덕론에서는 모든 도덕은 신을 향하는 이성과 피조물의 운동이라고 파악하므로 종국적인 목표는 피안에 있어서의 신직관이 된다. 여기에 인도하는 수단으로서 윤리적 행위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 도덕률을 영원 법의 반영이라 보고 초자연적 신에 근거하여 신을 향하는 목적론적 존재론의 체계 안에서 파악한다. 따라서 초월적인 동시에 자연의 이성의 소리가 된다. 이성에 복종하는 습성으로서의 덕에는 세 윤리 덕에 사려의 덕을 추가하고, 그 위에 은총에 의한 신학적 덕을 추가한다. 그중에도 사랑이 여러 덕의 형상으로서 인격의 최종적 완성을 이루게 한다고 주장한다.


신의 존재 증명에는 본체론적증명을 피하고, 경험으로 주어진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제1 원인인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다섯 가지 증명법을 사용한다. 악의 문제는 선의 결여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다음에 인격의 단일성을 믿는 그는 영혼의 유일 형상성에 바탕을 둔 인간학을 전재한다. 이성적 동물로서 영과 육의 합성체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영혼에는 이성 작용과 의지 작용이 있으며, 영혼은 이성적 인식 작용의 원리일 뿐 아니라 동물적·식물적 생명 원리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청년기는 이러하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족들의 연금에서 풀려나 나폴리로 돌아온 1245년부터 1248년까지의 행적, 특히 그가 1245년부터 1248년 전반기까지다.


 즉 그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따라 독일의 쾰른으로 떠날 때까지 약 3년 남짓한 기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그가 파리 대학교의 학생으로서 정규 교육 과정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학자들은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그 3년간 파리 대학교 혹은 파리의 도미니코회에서 토마스가 7개의 필수 과목을 공부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파리대학에서 강의하던 알베르투스의 신학 강의를 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먼저 인문학부에서 수학한 이후에나 신학과에 진학하여 신학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중세 대학 체제 상 토마스에게는 알베르투스의 강의를 들을 자격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년간의 파리 체제 이후 1248년 토마스는 쾰른에 있는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비로소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로부터 4년간 지도를 받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개연적이다.


 이 시기에 토마스는 알베르투스의 영향 아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물론 디오니시우스의 신학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한다.
 당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다른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은 그의 우람한 몸집과 과묵한 성격을 바라보던 동료들의 장난기가 섞인 ‘시칠리아의 벙어리 황소’였는데, 이 별명과 관련하여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알베르투스가 “지금 벙어리 황소라 불리는 저 수도사의 우렁찬 목소리를 온세상이 듣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별명과 이와 얽힌 일화와 전설들이 사실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 전설들은 이국땅에서 어눌한 외국어 구사 능력으로 인해 혹은 몇몇 전설이 전하듯이 말더듬이였기 때문에 자기 뜻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그래서 언어장애인 황소라는 별명으로 동료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이 소심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진 청년 수도사 토마스의 숨겨진 일면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소심한 젊은 제자의 침묵 뒤에 숨겨진 무한한 재능과 역량을 꿰뚫어 보고 이것이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 스승 알베르투스의 자상함과 혜안이 그가 전수한 학문적 지식과 더불어 미래의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어떤 영감으로 작용하게 되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는 데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