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말기의 유가 사상가이자 성악설을 주장한_순자에 대한 정보
순자는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1년) 말기의 유가 사상가이자 학자로 이름은 순황이다. 전한 선제의 이름이 비슷하였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를 위해서 손 황이라고도 불렀다. 경칭으로 순경 또는 손경자로도 불리기도 한다.
순자는 공자의 사상 중 ‘예’에 대한 부분을 강조 발전시켰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에 반대했다. 순자는 악한 본성을 ‘예’를 통해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성악설’을 주장했다.
그의 성악설은 자신의 저서 <순자>의 〈성악〉 편에 나타난 화석이 위(본성을 변화 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라는 명제로 대표된다.
순자의 사상에 대하여, 순자의 사상에서 바탕이 된 것은 예를 지상의 것으로 한다는 태도이다. 공자는 있는 그대로의 종교 의례·제도·관습을 예로 삼아 성인 주공에 의해서 집대성된 중국인의 전통적 문화유산으로서 신뢰하고 존중했다. 예는 공자의 경우 아직 덕목은 되지 못했었다.
순자는 기본적으로는 공자의 이러한 태도를 지지한다. 그도 예는 성인의 작위에 의한 것으로 영원히, 즉 시대의 제약을 초월하여 무한하게 타당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상고의 성왕 업적은 시대가 오래되므로 전승이 완전하지 못하여 후세 사람으로는 그 전모를 알 수 없다.
그 때문에 상고의 성왕, 즉 '선왕'이 만든 예는 후세의 왕, 즉 '후왕'의 업적을 보고 추정해야 한다고 하여 예를 생각하는 기준을 동시대로 옮겨버린다. 그리고 공자처럼 예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순자는 후왕이 예의 내용에 새로 추가하는 요소인 법률에도 성왕의 예와 같은 권위를 인정하고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그 결과 정치사상에서 그는 공자 이후의 덕치주의 전통에 새로 법치주의의 요소를 추가하게 되었다.
맹자는 성선설에 대하여 비판하였는데, 그는 공자가 예를 실천하는 인간의 주체성에서 발견한 덕성, 즉 인을 인간에게 구비되어 있는 하늘의 목적을 가진 법칙성, 하늘의 의지로 생각하고,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선이라고 했다.
순자는 욕망을 지니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에 눈을 돌린다. 그도 또한 인간의 덕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체내에서 5관을 통제하는 자율 심을 '천관이라 부르고 이것이 선을 이루는 주체라 하여 중시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즉 인간에게 선이 되려는 자율 심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악이라고 순자는 맹자를 비판한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데카르트는 명저 <방법서설>의 첫머리에서 "이성만큼 세상에 널리 퍼진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에게 없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모두 탐내지만, 이성은 아무도 탐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역설을 전개하고 있다. 순자도 그 초점은 데카르트와 다르나 논법은 같다고 하겠다.
"원래 덕이 박한 자는 후덕해지기를 원하고 추한 자는 아름다워지기를 원하며 가난한 자는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약 자기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외부에서 구하게 마련이다"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이해하면서 이를 야유하고 있다.
맹자의 인간론에 대한 순자의 비판에서 그 초점은 <인간의 덕, 즉 인간의 마음에 갖춰지어 있는 자율성을 하늘의 목적을 지닌 것> 또는 하늘의 의지를 담당하는 것으로 하는 맹자의 사고방식에 대한 부정에 있다.
초목의 생성, 4계의 추이와 같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하늘의 작업이며 하늘의 기능은 완성된 '구체적인 결과는 알 수 있지만, 그 원인이 된 무형의 곳은 알 수 없다'는, 즉 신비성이 하늘의 기능에는 있다는 것이 순자의 하늘 사상이다.
순자도 인간의 마음에는 법칙성에 지배되는 측면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의 기능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순자는 자연성·법칙성으로서의 하늘을 시인하는 것으로서, 하늘이 목적이나 의지를 갖는 것은 승인하지 않는다.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서는 천지 등의 자연현상에 관한 지식은 현상이 뚜렷해진 것에만 한하고 그 이상은 추구하지 않을 것, 마음을 청명하게 하여 5관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갖춰 자연이 명하는 대로 순응하며 자연스러운 본래의 감정을 도야할 것이라고 도가의 가르침과 똑같은 경험주의적인 신중한 인생 태도를 취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도가의 '도' 내지 '무위자연'의 사고방식과 같으며 거기에 일종의 불가지론적 태도, 즉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하늘·신·부처와 같은 절대자에 관해서는 인간이 알 수 없다고 하는 태도가 있다.
그러나 순자는 유가로서 도가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분명한 것은 성왕이 만든 문화, 즉 예라고 하여 예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순자의 성악설의 초점이다.
군주는 하늘의 의지인 '천명'과 '백성의 소리'로 정당화된다고 했다. 하늘의 의지를 부정하는 순자는 '백성의 소리'만은 그 정당성의 근거로서 남겨 놓았다.
순자가 생각하는 예의 내용에는 새로운 요소인 법률이 들어 있다. 순자는 맹자가 생각했던 왕자의 덕의 감화력에 의한 정치방식, '왕도'에 준하는 것으로서 공자나 맹자가 엄격하게 배격했던 권력에 의한 신상필벌 , 즉 법치주의 정치 본연의 자세로서 '패도'의 존재가치를 시인했다.
이러한 점에서 순자는 유가와 법가를 결부하는 구실을 다한 사상가라고 하겠다. 이유는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법가사상의 대성 자인 한비자는 '백성의 소리'마저 부정하여 당시의 권력자가 제정하는 법령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또한 덕치주의와 법치주의를 포함하는 정치사상은 한제국의 국교 적 존재가 되는 유교의 사상적 준비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