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속의 현상학에 대한 정보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에 의해서 창시된 철학으로 신칸트 학파와 같이 대상을 의식 또는 사유에 의해서 구성하는 논리적 구성주의에 서지 않는다. 또 분석철학과 달리 객관의 본질을 진실로 포착하려는 데에 철학의 중심을 둔다. 경험과 의식의 구조들을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상학의 선구를 이루는 것으로서는 베른하르트 볼차노의 논리학과 프란츠 브렌타노의 심리학을 들 수가 있다. 볼차노는, 명제가 나타내는 의미는 그 진위에 상관없이 주관에서 독립하여, 그 자체에 있어서 성립한다고 생각하였다.
브렌타노의 제자 알렉시우스 마이농은 이와 같은 '의식의 지향성'이라는 관점에 따라서 대상의 본질 구조를 밝히려 하였다. 그의 대상론은 보통 표상되는 현실적인 대상만이 아니고, 다만 사용될 수 있을 뿐인 비현실적인 것도 충분한 대상으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브렌타노는 이와 같은 객관적인 진리의 심리학적 포착을 중심 문제로 삼는다. 그는 의식이란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점에 조심하여 의식 현상의 본질은 대상을 '지향'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후설의 현상학은 위와 같은 두 면을 이어받아 한편에서는 객관적 진리를 어디까지나 엄밀하게 나타내려고 하는 동시에, 이것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 하는 '기술학'이다.
그는 '사상 자체에로’라는 것을 신조로 한다. 그에 의하면 철학은 엄밀하며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이제까지의 철학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성이 불충분하였고 형상적, 본질적 환원은 이러하다. 첫째의 '형상적' 또는 '본질적 환원'은 주어진 사물, 의식의 내용에 관해서 '자유 변경'을 가함으로써 가변적 요소를 제거하여, 거기에 발견되는 '불변 요소'를 '본질 직관'에 의해서 포착하는 방법이다.
이에 의해서 '본질학(또는 형상학)'으로서의 순수현상학이 가능케 된다. 이것은 말하자면 개별 물에 즉응 해서 이데아를 직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환원은 어떠한 본질학에도 필요한 방법으로 반드시 현상학에 특유한 것은 아니다.
현상학적 환원은 이러하다. 거기서 후설은 그의 철학의 방법으로서 '현상학적 환원’이라는 것을 제창하였다. 이것에는 두 단계가 구별된다.
현상학적 환원은 이러하다. 거기서 후설은 그의 철학의 방법으로서 '현상학적 환원’이라는 것을 제창하였다. 이것에는 두 단계가 구별된다.
초월론적 환원은 이러하다. 현상학에 특유한 둘째의 현상학적 환원, 협의의 현상학적 환원은 또 '초월적 환원’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상식이나 과학이 우리들의 밖에 초월하여 있다고 이해하는 존재를 순수의식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에 의해서 비로소 현상학 본래의 영역이 얻어진다. 그러나 환원에는 또 두 가지가 구별된다. 그 하나는 '저하론적 환원'이고, 다른 하나는 '간주관적 환원’이다.
간주관적 환원은 이러하다.
그러나 후설은 위의 '저하론적 환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하여 이것에 다수의 자아 또는 주관에 의한 공동의 환원인 '간주관적 환원'을 첨가한다. 그것에 의해서 비로소 세계 전체가 의식 내용으로 되는 것이고, 또 거기에 비로소 모든 존재적 본질의 엄밀한 포착이 성취되는 것이다. '저하론적 환원'이 데카르트에 위치를 잡는 데 대해서, '간주관적 환원'은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 있어서의 '예정 조화'라는 관념에 위치를 잡고 있다.
자아론적 환원은 이러하다.
상식·과학의 내용을 '지향성'이라는 구조를 가지는 순수의식으로 환원하여 거기에 사물의 순수한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현상학의 주제이다.
'자아론적 환원'이란 초월적 존재를 개개의 자아의 순수의식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의식이란 '무엇에 관한 의식'인데 이와 같은 의식구조를 후설은 '지향성'이라 부른다.
바꿔말하면 모든 의식 양태의 근저에 순수의식을 구하여, 일체를 거기에 영사하여 보는 셈이다. 즉 모든 의식 내용에 관해서, 긍정·부정의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보류하고 그것을 일단 괄호 안에 넣는다.
이리하여 최후에 아무리 해도 괄호 안에 넣어버릴 수 없는 '현상학적 잔여'로서의 순수의식에 도달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의 길을 답습하는 것이다. 거기서 이 순수의식은 칸트의 선험적 주관처럼 초개인 적인 논리적 의식이 아니고, 완전한 개인적 의식이다.
철학사상의 하나인 구조주의에 대해 알아보자.
구조주의는 인문학과 사회 과학 등 다양한 학문에 영향을 미친 철학의 사상 흐름의 하나로, 근본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 위에 정신적,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성립하며, 그 구조에서 특정 개인이나 문화의 의미가 생산된다는 관점이다.
본디 언어학에서 출발하였지만, 점차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서 언어, 문화, 정치,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유명한 접근 방법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구조주의의 출발은 보통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 연구라고 보며, 프랑스 학자들이 소쉬르의 구조적 접근법을 다른 학문에 적용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1900년과 1930년 사이에 언어학에서 발전되었으며 구조주의가 학계에 등장한 것은 20세기 중반 무렵이었다.
그 이후 구조주의는 영향력을 넓혀 나갔는데, 특히 인류학, 신화학 등 문화, 언어, 사회와 관련된 학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20세기에 등장한 구조주의의 시작은 소쉬르가 연구한 언어학으로 여겨지며, 구조주의가 사상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확립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초기로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저서인 <야생의 사고>에서 사르트르를 비판하며, 반인 간주의, 반역사주의의 시점을 요청했을 때부터이다. 현상의 인간적 의미나 역사의 연속적 생성은 겉보기뿐임에 불과하며, 과학적 분석은 그것들을 해체하여 그 바닥에 간직된 비인간적 구조, 비연속적 체계를 명백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 구조주의는 포스트구조주의나 탈구조주의에 비해 영향력을 많이 잃었다. 그 까닭으로 여러가지가 지목되나 특히 구조주의가 개인이나 요소보다는 결정론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구조를 설정하였기 때문인데, 68 혁명과 같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일어난 정치적 변동이 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관심이 정치적 변동과 권력의 분산으로 옮겨갔다.
이와 같은 견해는 그때까지의 사상계의 인간주의적 관심에 대한 강력한 반동을 촉구하는 것이 되어, 이윽고 푸코에 의해 그의 철학적 테제가 부각되기에 이르렀으며, 알튀세르 및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구조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80년에는 언어의 명확한 논리적 구조보다는 근본적 모호함을 강조하는 탈구축이 인기를 얻었다. 20세기 말까지 구조주의는 사상에서 중요한 학파로 평가되었으나, 구조주의 그 자신보다는 그것에서 파생된 다른 운동이 관심을 끌었다.